아버지와 아들

몇 년 전 김진호라는 가수가 자전적 자작곡인 ‘가족사진’이라는 노래를 “불후의 명곡”에서 불렀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 노래를 듣던 수많은 사람들이 눈가를 훔쳤다는 것. 나도 울었다. 그 가사가 어쩌면 그리도 나와 우리 아버지의 관계를 잘 나타내어 주던지.

“… 어른이 되어서 현실에 던져진 나는 철이없는 아들이 되어서 이곳저곳에서 깨지고 또 일어서다 외로운 어느날 꺼내본 사진속 아빠를 닮아있네 ….”

아버지와의 관계에 대해 말하면서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아버지에 대한 자식들, 특히 아들들의 화, 분노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폭행하게 되는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간혹 괴롭히거나 함부로 대하는 것만 보아도 어머니에 대한 애착과 동정심을 가진 아들들은 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갖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덩치가 자란 사춘기 남자 아이들은 심지어 아버지가 어머니를 괴롭힐 때 아버지를 정말 ‘어떻게’ 해버리고 싶은 충동의 순간을 경험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물론 그런 충동을 행동으로 옮기는 경우는 극히 드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는 심각하다. 자신을 나아준 아버지에 대해, 어떤 이유로든 그런 끔찍한 생각을 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들은 죄의식을 갖게 된다. 그래서 그 자식들은 아버지에 대해 분노뿐 아니라 아버지에 관련해 죄의식까지도 갖게 된다.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그 반대편에 서 있는 죄의식은 동시에 복합적으로 아버지에 대한 그 자녀의 태도와 관계를 지배하게 된다. 아버지에 대해 그런 죄의식과 화를 가지고 있는 자식은, 아버지에게 마음 속에 품은 따뜻한 말 한 마디조차 표현하지 못한다.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라는 동요를 율동과 함께 부르며 아버지에게 힘을 주던 아이는 저 멀리 추억 너머로 이미 오래 전에 사라지고 없다. 마음 속에 응어리가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런 자식들은 아버지가 없는 자리에서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한 얘기만 나와도 찜찜함을 느끼고 우울해진다. 아버지에 대해 품었었던 끔찍한 생각에 대한 죄의식 때문이다. 이런 자식은 아버지와의 관계에 있어서, 피해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해자이기도 하다. 분노와 죄의식의 컴플렉스는 그 사람에게 아버지에 대해 정말 해결하기 어려운 심리적 정신적 문제를 갖게 하고, 그것은 고스란히 상처 혹은 응어리로 가슴 속 깊이 자리잡아 그의 인생을 짓누른다.

참으로 아이러니 한 것은, 김진호가 노래한 것 처럼, 어느 날 자신도 자신의 자식들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고 몸서리치는 회한을 느끼게 된다는 점이다. 아버지를 용서하지 못 한/하는 자신, 아버지와 화해하지 못 한/하는 자신을 혹은 원망하기도 하고 혹은 부끄러워 하기도 하면서. 아버지가 건강하게 살아계시는 경우에는 그래도 심리적 압박이 크지 않다. 화해의 기회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버지가 이미 돌아가셨거나 혹은 기억을 잃은 후라면, 아 이일을 어찌하랴! 그 아픈 가슴. 그래서,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자식은 부모의 영전에 피를 토하듯 회한의 오열을 하지만 무슨 소용이 있으랴.

어떻게 해야 할까? 자식된 자들에게 (다시 말하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우선 세가지를 말하고 싶다. 첫째, 용서하라. 용서하지 않는 자는 용서 받지 못한다 (마태복음 6:15). 당신이 아버지에 분노를 갖게된 그 원인이 무엇이든, 아버지를 용서하라. 따지려 하지 말고 용서하라. 용서에는 조건이 없다; 조건없이 하는 것이 진정한 용서다. 설사 그 아버지가 여전히 변하지 않았거나 불행히도 더 나빠졌다 해도 용서하라. 상대방의 변화를 보고 하는 용서는 세상적 사람들이 하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 해야 하는 용서는 무조건적인 것이다. 왜? 우리 주님은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고 조롱하고 있는 자들조차 용서하시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셨지 않은가 (누가복음 23:34)? 복음에 순종하여 죽은 스테반 집사는 자신을 죽이려 악을 품고 자신에게 돌을 던지고 있는 자들을 용서해달라는 기도를 드리며 죽어가지 않았는가 (사도행전 7:60)?

둘째, 회개하라. 아버지의 폭언, 폭행, 괴롭힘, 외고집 그 어떤 좋지 않은 것을 보고 품었더라도, 아버지에 대해 끔찍한 마음을 품은 것 자체가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죄다 (디모데전서 1:9). 하나님의 벌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회개밖에는 없다. 무조건 하나님 앞에 무릎꿇고 회개하라. 그런 마음을 잠시잠깐, 찰라의 순간이나마, 품었던 것을 회개하라. 악은 마음에 품는 것만으로도 이미 죄다 (마태복음 5:28). 

세째, 아버지와의 관계를 회복하라. 아버지를 아버지로 공경하라. 그 아버지가 여전히 과거와 똑같다 하더라도, 아니 심지어 더 악화되었다 하더라도, 공경하라.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주실 때, ‘부모가 너희에게 잘하고 좋을 때만 공경하라’고 하시지 않고, 그냥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셨음을 잊지 말라 (출애굽기 20:12; 에베소서 6:2-3). 아무리 포악한 부모라도 공경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것임을 잊지 말라. 다시 말하면 공경하지 않는 것은 0이 아니라 마이너스, 즉 죄이다. 물론, 포악한 부모의 죄를 도와주고 동참하라는 뜻이 아니다. 부모로서 공경하라는 말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거나 정신을 잃으신 후에 후회하며 회한의 오열을 쏟아낸들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잘 알지 않는가? 오늘 당장 이것들을 실행하라. 아버지는 아직도 그런 사람이라고 항변하지 말라. 앞서 말했듯이 그것은 당신의 죄를 없게 해 주는 면죄부가 되지 못한다. 이것을 기억하라: 당신이 아버지를 용서하고 사랑하지 않는 한, 당신도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고 사랑받을 수 없다는 것을. 당신이 아버지에 대한 응어리를 가지고 있는 한 하나님은 당신의 예배를 받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마태복음 5:23-24). 당신을 나아준 아버지를 어떤 이유로든 사랑하지 못한다면 당신이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실제로 없다는 것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당신이 당신의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는 그 모습을 당신의 아이들이 그대로 바라보며 자라고 있다는 것을. 김진호의 노래 가사 속에 담긴 인생의 진리가 말하듯이, 언젠가 그 아이들은 당신을 닮아 있을 텐데, 아버지에 대한 미움과 죄의식을 가지고 살고 있는 당신의 그 모습을 닮게 하고자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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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thought on “아버지와 아들

  1. 나이 40이 넘도록 고민하던 아버지에 대한 양가감정을 목사님께서 아주 잘 짚어주셨네요. 많은 사람들이 격는 내면의 갈등을 주님앞에서 해결 받고 성숙한 아버지 어머니로 성장하는게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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