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뉴얼

처음 시작한 사업이 S핸드폰 플라스틱 케이스 내부에 전자파차단 코팅을 하는 제조업이었다. 하루에 수만개의 제품을 자동화된 페인팅 로봇들로 코팅 처리한다. 코팅한 후에 건조, 전도성 검사, 흠집 검사 등을 거쳐 포장을 해서 삼성에 납품을 한다. 컴퓨터로 프로그래밍을 하는 페인팅 로봇이 가장 중요한 설비였다. 그 로봇이 한 대에 4천만원이나 하다보니 많이 가지고 있을 수 없어서 한 대라도 고장날라치면 생산에 큰 차질이 생겼다. 그래서 유지관리에 여긴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안 되었다. 기술자들에게 일차 관리책임을 주는 외에 공장장이던 이사에게 최종적인 책임을 두었다. 워낙 예민하고 정밀한 조작을 요하는 기계인지라, 깐깐하고 엄격한 관리에도 불구하고 말썽이 없지 않았다. 한 번은 한 기계가 고장나 삼일이나 생산에 지장을 준 적이 있다. 나중에 원인을 찾아내고 나서 정말 황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너무나 터무니 없이 간단히 찾아낼 수 있었던 문제였기 때문이다. 

한 기계에서 갑자기 페인트가 균일하게 나오지 않았다. 품질관리 단계에서 문제를 인지하고 그 기계의 가동을 멈출 때까지 많은 불량품을 쏟아 냈을 것이다. 불량이 하나 나면, 10개의 정상품이 주는 이익을 상쇄해 버린다. 생산차질 외에도, 따라서, 심각한 손해다. 이런 경우에 기술자들은 보통 로봇의 핵심 부품인 펌프를 분해해서 세척을 했다. 미국에서 수입한 그 H펌프는 사람의 심장과 같이 두 개의 압축기를 가지고 있다. 압축과 팽창을 반복할 때 생기는 압력의 변화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두 압축기가 균형을 맞추어 작동하도록 되어 있다. 둘 중 하나의 어딘가가 동맥경화처럼 막히는 경우에 이런 현상이 난단다. 그 기계의 담당 기술자는 대수롭지 않게 여느 때와 같이 자리를 넓게 펴고 펌프를 분해해 모든 부품을 깨끗이 세척을 했다. 그리고 조립을 했다. 사실 펌프의 부품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경력 10년 이상인 ‘뺑끼쟁이’들은 조금 과장을 보태서 눈을 감고도 분해 조립을 할 정도다. 그 담당자도 그랬다. 그런데, 이번엔 조립 후에 상태가 오히려 더 악화되었다. 아예 스프레이가 되질 않고, 페인트가 줄줄 흐른다. 모두 놀랐다. 기술자들이 모여서, 담당자와 얘기를 나누면서, “그럴 리가 없는데 …” 라는 말을 연신 반복했다. 퇴근시간이 지났지만, 해결되지 않았다. 공장장이, 알아서 고쳐 놓을 터이니, 먼저 퇴근하라고 한다. 나는 밤새 고쳐질 것이라고 믿고 퇴근을 했다.

왠걸 다음 날 아침, 여전히 기술자들은 그 펌프와 씨름을 하고 있었다. 내가 보는 앞에서만도 서너 번은 족히 분해와 조립을 반복했지만, 페인트가 줄줄 흐를 뿐 스프레이가 되지 않았다. 급기야 로봇을 만든 회사에 기술지원을 요청했지만, 스케줄이 밀려 몇 일 후에나 올 수 있단다. 난감했다. 최종 관리 책임자인 공장장은 내 앞에서 고개도 들지 못한다. 마포에 펼쳐진 부속들이 몇 개 되지도 않는데, 그리고 단 하나의 부속도 망가지지 않았는데, 그리고 기술자들이 속된말로 눈감고도 분해하고 조립해 오던 기계인데, 그리고 정말 성실한 담당 기술자인데 … 왜 안 될까? 고참 기술자가 일일이 부품 하나 하나를 내게 보여주며 설명하면서 조립을 했다. 그러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또 하루가 지났다. 손해가 이만 저만이 아니다. 이제는 기술자 두엇과 공장장이 열일 제치고 그 펌프에 매달려 있는 판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고칠 수만 있다면 그게 더 이익이기에 아뭇소리 하지 않고 끈기를 가지고 해 보라고 격려만 했다.     

다음 날 아침에도 펌프는 여전히 골칫거리로 남아 있었다. 공장 직원들 분위기도 조심스럽다. 기계 하나가 서서 생산차질이 생긴 것을 다 알기 때문이다. 일을 하기 위해 앉아있는데, 제품이 충분히 컨베이어를 타고 흘러 오지 않는다. 기계 5대 중 하나였으니까, 일의 양이 오분의 일만큼 준 셈이다. 나도 속이 탔다.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이제는 ‘뺑끼쟁이’들 오기가 발동해서 기술자들이 사장인 내눈치를 살필 겨를도 없어 보인다. 오기만큼 코를 벌름거리면서 씨름을 해보지만 소용없었다. 벌써 삼일째다. 바로 그때, 내 손으로 한 번 조립을 해 보고 싶었다. 나도 공대를 나오고 손재주가 그리 나쁜 편이 아니기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마지막으로 내 손으로 한 번 시도해 보고 안 되면 포기하고 새 펌프를 주문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나는 한 번도 그 기계를 분해하고 조립해 본 적이 없었다는 점. 그래서, 내게는 한가지 꼭 필요한 것이 있었다. 바로 매뉴얼이다.

기계의 오른 편 플라스틱 케이스에 매뉴얼이 비치되어 있다. 나는 팔을 걷어 부치고 매뉴얼을 가져와 보라고 했다. 미국 사람들 정말 대단하다. 매뉴얼에 모든 부품의 이름과 넘버 그리고 조립 순서 및 방법까지 그림과 설명을 다 해 놓았다. 부품이래 봐야 많지 않아서, 쉽게 따라 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하나의 하얀 플라스틱 ‘링’을 조립할 때, 기술자 하나가 끼어들었다. “사장님, 그거 반대로 하셔야 합니다.” 나는 매뉴얼대로 하고 있었는데, 그 기술자는 내가 틀렸다고 말했다. 부품의 모양을 봐도, 그의 말이 맞아 보였다. 그리고 설마 이것 앞뒤 바뀐다고 큰 문제가 되겠냐 싶어, 그 말대로 그 부품을 반대로 돌려서 조립했다.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그럼 그렇지. 기술자가 해도 안 되는 것을 내가 해서 되겠어?” 하고 포기하는 마음으로 돌아서려는데, 그 반대로 끼운 부품이 맘에 걸렸다. 보기에는 기술자 말이 맞는 것 같았지만, 매뉴얼과 다르지 않았던가? ‘뺑끼쟁이’들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살짝 웃기까지 하며 아까 그 부품을 매뉴얼에 나온 대로 조립해 보자고 했다. 그들은 내키지 않지만, 사장이 해보라니 어쩔 수 없이 하는 눈치였다.

거짓말같이 스프레이가 시원하게 나왔다, 쉐——액. 주변에 서 있던 직원들이 모두 환성을 질렀다, 기술자들은 빼고. 그때 이전에는 ‘뺑끼쟁이’들은 운좋게 그 부품을 본래대로 무심코 조립을 했을 게다. 그런데, 어떻게 하다가 그 링의 방향이 바뀌게 되었고, 자신들의 직관만으로 조립을 하던 그 ‘뺑끼쟁이’들은 함정에 빠지고 말았던 것같다. 돌다리도 두들기며 건너듯이 매번 매뉴얼을 앞에 두고 체크해 가며 그대로 하는 버릇을 들였었더라면, 이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 게다. 그들은 오기와 염치가 범벅이 되어 울그락불그락 했다. 그 기계의 전문가임을 자처하며 폼을 잡던  ‘뺑끼쟁이’들이 그 기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장에게 한 방 먹은 셈이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그들보다 나아서도 아니고, 그들이 나보다 못해서도 아니다. 다만, 나는 매뉴얼에 의지했고, 그들은 자신들의 직관에 의지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하늘과 땅차이—성공과 실패.

사람들에게 “성경을 직접 읽으라”고 말할 때마다, 그때의 매뉴얼의 중요성에 대한 기억을 한다. 내가 아는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좀 안다”고 말한다. 그리고, 성경공부를 게을리 한다. 그들에게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인도해 줄 수 있는 것은 그들의 직관 혹은 경험이지 ‘매뉴얼’이 아니다. 그들은 수없이 인생의 실패와 헛수고를 반복해도 ‘매뉴얼’로 돌아가려 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매뉴얼’이 있다는 것조차 모른다—신경쓰지 않는다. 자기확신, 자신감이 강하면 강할 수록 더욱 더 그렇다. 다시 말하면, 성경 꽤나 읽었거나, 교회 꽤나 다녔거나, 혹은 설교 꽤나 들었거나 한다는 사람들이 더더욱 그렇다는 얘기다. 그들에게는 이제 ‘매뉴얼’을 본다는 것은 유치하게 느껴진다. 그들은 이제 이미 충분히 다 알고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고린도전서 8:2참조). 자신들의 무지나 실수의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적반하장격으로 오히려, ‘매뉴얼’을 보고 그대로 하려는 사람들에게, “그거 반대로 하셔야 하는데요”라고 말한다. 뿐만 아니다. ‘매뉴얼’대로 하는 사람들을 이런저런 이유로 뒤에서 무시하고 심지어 직접 간접으로 핍박하기까지 한다. 그들에게는 ‘매뉴얼’ 보다 더 대단하고 따를 만한 게 있다. 어떤 이에게는 “우리 목사님 왈” 이 그것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어떤 책의 저자 왈”이 그것이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내 생각에는”이 그것이다.          

그러나, 기억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말씀이 바로 심판자라는 사실이다 (요한복음 12:48).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곧 영이요 생명이라는 사실이다 (6:63).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검인데 (에베소서 6:17), 좌우의 날선 검과 같아서 모든 거짓을 잘라내고 오직 참된 진리만이  그 서슬을 피해갈 수 있는 예리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히브리서 4:12). 하나님의 말씀만이 하나님의 사람을 온전케 할 능력이 있다는 사실이다 (디모데후서 3:17). 하나님의 말씀 즉, 인생과 구원의 ‘매뉴얼’에서 눈과 마음을 멀리하지 말자. 그게 누구든 사람의 말이 아니라, 우리의 직관이 아니라, 그 ‘매뉴얼’ 즉, 성경만이 100프로 성공을 캐런티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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