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신난다

아틀란타같은 곳에서 살게 되다니, 정말 신난다. 아틀란타는 다양한 인종, 민족, 문화, 언어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글로벌 도시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큰 어느 도시든 마찬가지겠지만, 그리 크지 않은 크기의 도시에 이렇듯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살다 보니, 내가 사는 네이버후드 조차 글로벌 월드다. 내가 살고 있는 타운하우스 단지에서만도 인도인, 중국인, 한국인, 흑인, 백인, 베트남인 등등을 매일 볼 수 있다. 이런 글로벌한 도시에 살게 된 것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지 …. 그것은 다름 아니라 내가 여생을 바친 일과 관련이 있다. 

내가 미국에 온 후 겪은 아픔은 내가 여생을 바쳐 하고자 하는 일의 밑거름이 되었다. 미국에서 첫 대학원을 다닌 3년 반동안 나는 보이지 않는 적들과 싸워야만 했다. 그것은 새로운 언어 즉, 영어와 미국문화였다. 테네시 주립대학에서 2달 동안 ESL을 한 후 어느 크리스챤 대학 대학원에 성경전공으로 입학이 되었다. 잘 되었다고 좋아했고, 내가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교만이고 오만이고, 오산이었다. 첫 한해 동안 수업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고, 발표는 원고를 써서 읽어야 했고, 리딩 숙제는 한번도 다 할 수 없었고, 말을 못 했기 때문에 클래스에서 그저 듣고 있어야만 했다. 특별한 내용이 아니어도 거침없이 유창하게 발표하는 미국 학생들이 얼마나 부럽고 샘이 났던지. 지독한 편두통이 왔다. 미국 아이들보다 느리기 때문에 잠잘 시간이 줄어들었고, ‘영어번역기’를 머리 속에서 돌리느라 내 뇌가 두배 이상의 일을 했기 때문이었을 게다. 그래서 나는 그 두통을 “영어두통”이라고 부른다.

언어는 그나마 나았다. 문화를 알지 못하니 나는 바보고 어린 아이였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장면이 있다. 어느 날 밤, 교회에서 그 대학 합창단이 공연을 했다. 공연이 끝나고 많은 사람들 속에 섞여 어떤 한 여학생 단원과 인사를 나누었다. 같은 대학을 다닌다고 소개를 하고 더듬거리는 영어로 잠깐 얘기를 나누었다.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시종 환하게 웃으며 내 말을 들어주던 백옥의 천사같은 그 학생이 나를 친구로 받아들이는 듯한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학교에서 친구들과 함께 있는 그녀와 마주쳤다. 너무나 반가운 마음에 다가가서 인사를 했다. 그런데 그녀는?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눈치였다. 멋쩍어진 전날 밤에 공연 후에 만난 일을 상기시켰다. 그녀는 그제야 마지못해 기억나는 채를 했다. 혼자 오버했다는 걸 알아 챈 나는 낯이 뜨거워져 황급한 인사를 뒤로 하고 돌아섰다. 그리고 등뒤로 평생 잊을 수 없는 소리를 듣고 말았다, 물론 영어로. 그녀가 그 친구들에게 황당하다는 듯이 하던 말: “얘들아, 쟤가 날 안대. 나는 전혀 모르는데. 하하하하.” 그 뒤로부터 미국인들의 환한 미소와 친절한 대화를 액면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문화적 매너에 불과한 것임을 그때 뼈저리게 배웠기 때문이다.

두번째 대학원에서는 더 심각했다. 학생이라야 100명도 안되는 세미나리(신학대학원)였는데, 미국백인 중심의 문화와 생각에 의해 지배되는 작은 섬 같았다. 외국인은 나와 혼두라스에서 온 친구 하나. 흑인은 두어 명 나머지는 모두 백인. 여름학기 교회사 초빙 교수를 제외하고는 모두 백인일색. 피부색이나 민족, 인종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양성에 대한 관심이 필요없는 상황을 말하려는 것이다. 세미나리에서는 ‘그들의’ 주류 성경 해석을 가르친다. 당연하다. 그게 싫으면 거기에 가지 말았으면 그만이다. 모르고 간 나는 그들의 성경해석 및 방법에 동의하지 못했다. 그들은 최대한 문자적(literal)이고 사회역사적인(socio-historical) 해석을 과학적(scientific)이라고 생각했다. 반면, 나는 글(text)의 문맥(context)에 기초한 문학적(literary; textual analysis) 해석이 성경이 쓰여진 방식에 더 맞다고 생각한다. 나는 동양의 다른 종교들 및 지혜들은 물론 부모님으로부터 배운 인생의 지혜까지도 이용하여 인간이라는 존재의 보편적 ‘가치’에 기반해 성경을 해석한다. 그러니 같을 수 가 없었다. 그러나,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다. 다른 것을 틀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것만이 맞다고 생각하는 오류를 갖고 있다. 그러나 성경 자체가 그것은 옳지 않다고 가르친다 (로마서 14; 고린도전서 8).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다른 것을 틀린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즉, 나는 그들에게는 틀린 사람이었다. 성경해석이 그 어떤 것 보다 중요한 크리스챤 세미나리에서, 주류와 다른 해석을 하는 나는, 결국 보이지 않는 왕따였다. 각 사람들이 가진 배경의 다양성으로부터 나오는 다양한 성경해석의 가능성을 보지 못하는 문화적 보수주의는 내 가슴을 수십번 수백번 후비고 베었다.

그러나 그때는 그 고통의 이유를 몰랐다. 때로는 그들에게 책임을 돌려 보려고도 했지만, 원수까지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믿는 나로서는 결국 자책감에 시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너무도 괴로왔다. 그 이유를 알게 될 때까지 더 크고 더 아픈 상처를 겪고 견디지 않으면 안 되었다. 더딘 비자 승인을 기다리기 위해 TESL(영어제2외국어교육) 석사과정을 하게 되었다. 언어 및 문화가 다른 상황에서의 영어 교육을 다루는 과정이다. 첫학기에 이미 왜 하나님께서 비자 승인을 빨리 되지 않게 하시고, TESL과정을 하게 하셨는지를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거기서 들은 강의들을 통해서 내가 겪은 모든 어려움의 원인이 문화와 언어의 다양성(diversity)과 그 다양성의 중요성에 대한 나와 주변 사람들의 무지에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를 수년 간 짓누르고 있던 자책감에서 TESL과정이 나를 해방시켜 주었다. 그걸 깨달았을 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다시 한번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TESL석사 졸업식 날을 불과 일주일 앞두고 비자가 승인되었을 때는 소름마저 끼쳤다.

이제 내겐 분명하다: 하나님께서는 나처럼 언어와 문화와 인종의 차이 때문에 고난을 받는 사람들을 위해 하실 역사를 위해 이 미천한 자를 종으로 부르신 것이다; 또한 그 일에 합당한 준비를 위해 그 7년 반 동안 그 수많은 설움과 아픔과 고통을 겪고 견디고 이겨 내도록 단련하신 것이다. 이제 아틀란타로 이사온 것이 왜 이렇게 나를 신나게 하는 지를 눈치챘을 것이다. 내 주변에서 인종, 문화, 언어, 생각 …. 다양함을 보면 볼 수록 더욱 신이 난다; 하나님께서 이루시고자 하는 역사가 그들 속에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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