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년을 살다보니 아버지가 삶으로 혹은 말씀으로 나에게 주신 가장 큰 교훈은 주어진 환경을 불평하지 않는 것과 사람들에게 대항하지 않는 것으로 수렴된다. 어렸을 때 나는 아버지의 그런 모습들을 교훈으로 보기보다, 부족함이나 약함으로 여겨 부끄러워하기도 했다. 그러나 인생을 이만큼 살다 보니, 더구나 내가 살아온 환경이 사람들에게 억울함을 당하지 않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기에, 그것들이 내 삶에 중요한 교훈임을 깨닫는다. 나아가서 그것들은 기질, 성격, 혹은 개성이 되어서 내 안에 살아 움직이고 있다. 그 교훈만으로도 나는 우리 아버지에게 감사하고, 나아가서 아버지는 내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멘토다.
내 아들들이 나만큼 인생을 살았을 때에 그들의 아버지로서 나의 삶과 가르침들로부터 뚜렷이 떠오르는 큰 교훈은 무엇일까? 그것들은 반드시 내가 의도한 것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으니 그것이 무엇일지 쉽게 짐작하기 어렵다. 더군다나 그것은 내 입장에서 판단할 것이 아니기도 하다. 내 아들들이 직접 자신들의 인생을 회상하면서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그것을 생각해 내든 생각해 내지 못하든, 그 교훈들은 내 아들들의 기질, 인성, 혹은 인생 철학의 일부분이 되어 있을 것이다. 이런 것들이 대대로 모여서 가문의 정신이 되고 나아가서 위대함이 되기도 하고 업적이 되기도 할 것이다. 그러니, 어찌 중요하다고 하지 않을 것인가?
나는 아들들에게 무엇을 인생의 교훈으로 만들어가고 있을까? 내가 의도적으로 노력하는 대로 되지는 않을 수도 있다. 자녀들은 그렇게 애쓰는 모습도 그리고 실망하는 모습도 함께 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단지 ‘나는 내 인생이 내 아들들에게, 그리고 나를 가까이서 본 후세들에게 어떤 교훈을 남기도록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뿐이다. 내 생각과 내 삶이 다를 수도 있기에 조심스럽지만 겸손하게 말해 보려고 한다.
나는 모든 일에 순수함과 정결함을 지키며 살았다는 것을 내 아들들이 지금의 내 나이쯤 되었을 때, 내 삶을 통해 볼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어려서부터 모든 일에 거짓이 없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왔다. 내가 예수님의 가르침을 공부할 때 가장 먼저, 가장 깊이 반했던 것은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는 원칙이 모든 가르침의 바탕에 있으며, 위선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정반대되는 것으로서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진리였다. 어려서부터 나름 지키려 했던 내 일종의 인생철학을 하나님께서 승인해 주시는 것 같아서 전율을 느꼈었다. 그리고 60을 바라보는 오늘도 나는 매사에 순수함을 지키며 살려고 한다.
내가 말하는 순수함은 말과 마음이 일치하는 것, 그리고 행동이 드러내는 의로움과 내 실제 마음의 의로움이 일치하는 것이다. 첫번째는 정직함을 말하는 것으로서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반면에 둘째 것이 말하는 깊이까지는 이해하기도 쉽지 않고, 지키기는 더욱 어렵다. 그래서 간단히 설명을 하자면, 사람들은 그 사람의 행위를 보고 그 행위가 통념적으로 의미하는 의도가 그 행위를 하는 사람의 마음 속에 있다고 믿어준다. 물론 마음이 삐뚤어진 사람이나 그 행위자의 위선적인 인격을 익히 아는 사람은 그 행위자의 의도를 쉽게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판단과 관계없이, 사람의 행위는 대체로 통념적으로 인정되는 어떤 의도를 전제하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표현하는 역할을 한다. 미소는 친절한 마음을, 손을 흔들어 주는 것은 평화를, 가난한 사람에게 돈이나 음식을 주는 것은 자비를 베푸는 마음을 표현한다고 우리는 보통 믿는다. 순수함은 어쩌면 행위가 표현하는 통념적인 의도와 행위자의 실제 의도가 일치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순수함은 매사에 진정성을 갖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군가에게 사랑한다고 말한다면 사랑이 그 마음 안에 있어야 그 사랑이 진정한 것이고 그 사람이 순수한 사람이다. 말보다 더 쉽게 오해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의도를 직접 밝히지 않고 하는 행위다. 하나님을 예배한다면 그 정신 안에 하나님의 정신과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헌신이 있어야 한다. 예배하는 장소에 앉아서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 안에 하나님이 원하는 정신과 마음이 없다면, 그 행위는 예배라는 행위가 가진 본래의 목적을 위한 행위가 아닌 다른 목적을 위한 행위다. 다른 목적이 섞여 있는 것이 바로 불순함이고 순전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심판은 그 사람의 마음의 의도를 드러내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고린도전서 4:5, 히브리서 4:12).
순수함을 지키며 살아야 함을, 그리고 그렇게 산 삶이 아름다운 삶이라는 것을 내 아들들이 내 삶을 통해 보고 배운 교훈이 된다면 나는 인생을 잘못 산 것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내 아들들의 내 삶에 대한 평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그들의 내면 속에 살아서 우리 가족들의 귀중한 전통의 기초로 자리 잡는다는 것이다. 이번 아빠의 날에 아들들이 쓴 카드를 보고 감사하고 다행인 것은 내 두 아들들이 아빠의 삶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하는 것 같지는 않다는 것이다. 부끄럽지만 자랑스럽다.
당신의 모든 자녀들의 머리카락 숫자까지 아실 정도로 모든 것을 감찰하시고 아시는 하나님께서 내게 어려서부터 순수함을 생각하게 하고 훈련받게 하고 나아가서 지킬 수 있게 해 주셨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나에 대한 사명임이 분명하다. 순수함을 지키고 그것으로 세상에 빛을 비추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가장 먼저, 가장 가까이에서 그 빛을 받을 사람들은 내 아들들이기에, 그 사명은 결국 우리 가정에 대한 사명이기도 하다. 나는 그 사명을 끝까지 이루어 나가고 싶다.
2026년 아버지의 날을 맞이하며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