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이대로는 안 된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정치구호가 아니다. 교회에 대한 한탄의 말이다. 이제 더 이상 현실의 기독교는 성경이 가르치는 기독교가 아니다. 이는 교회다니는 사람이건, 성당에 다니는 사람이건, 심지어 예수를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도 하는 생각이 되었다. 기독교가 더 이상 기독교가 아닌 것은 당연히 대부분의 ‘교회’들이 성경이 말하는 교회 즉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근원적으로는 그 그런 ‘교회’의 구성원인 교인들이 더 이상 성경이 말하는 크리스챤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을 바라보며 참담해하고 비관하며 절망을 느끼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 “이대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엘리야의 오류

그러나 그건 그들의 착각에 불과하다. 교회가 무엇인가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에 하는 생각에 불과하다. 그들이 바라보며 한탄하는 대상은 교회라는 이름을 이용하는 세상사람들이지 교회가 아니다. 즉 교회가 아닌 것을 바라보며 교회인 줄 알고 착각하여 참 교회의 모습이 없다고 한탄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그들이 바라보고 있는 것은 그 태생부터 이미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교회라는 거짓 간판을 단 세상사람의 종교적 비즈니스 집단이다. 따라서 그들이 성경이 말하는 교회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았다면 그런 종교적 소셜 그룹들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시간과 감정을 허비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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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착각 속에서 한탄을 하는 사람들은 스스로는 하나님을 걱정하고 예수님의 구원의 사역을 염려하는 듯하지만, 사실은 하나님이 절대적 주권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을 불신하고 있는 것이다. 무지로부터 나오는 순수함이라고 잠깐은 이해해 줄 수 있을 지 몰라도 계속 그러고 있으면 결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갈멜산에서의 승리 이후에 자만에 빠져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을 잠시 잊어버리고 현실을 개탄하던 엘리야의 오류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엘리야가 신실한 자는 오직 자신밖에 남지 않았다고 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바알에게 무릎꿇지 않은 7천인을 남겨두”셨다 (열왕기상19:18). 현실만을 보고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가 보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남겨두신 그 7천의 나머지(remnant)이지 타락한 세상 사람들이 아니다.

현실의 수많은 ‘교회’ 간판을 단 종교적 소셜 클럽들과 그 구성원들이 ‘교인’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세상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을 보고 기독교의 침몰과 몰락을 한탄하는 사람들은 바로 엘리야와 같은 오류에 빠져 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도 없을 뿐 아니라, 교회가 무엇인가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도 깨우치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 오류로 인해 엄연히 살아서 역동적으로 구원 사역을 행해 나가고 있는 주님의 몸된 교회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한탄은 불필요하고 심지어 불경스럽기까지 하다. 그들의 생각과는 달리,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며 살아 역사하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를 통해 구원받는 사람들을 날마다 더하나 나가고 계시는 하나님의 백성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엄연히 건재하기 때문이다.

참된 교회의 증거=서로 사랑함

교회란 주님의 피로 사신 바된 구원받은 사람들이다. 교회 간판을 달고 종교 비즈니스를 하는 곳들은 주님께서 피로 씻어 깨끗게 하여 정결케 해 하나님께 백성으로 드린 교회와는 하등 아무런 관련도 없다. 주님의 교회인가 아니면 종교 비즈니스 집단인가는 단 한 가지로 분별된다. 구구절절한 다른 이론이나 변론도 필요없다. 단 한 가지가 살아 있는가를 보면 된다. 서로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다. 그 사랑으로 연합된 자들이 아닌 한 그들은 주님의 교회가 아니다. 왜 살아있는 진정한 사랑만이 그 기준이 되는가?

첫째, 예수님께서 그의 제자들 즉, 크리스챤들에게 준 유일한 계명이 바로 “내가 너희를 사랑했듯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이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13:34). 따라서, 다른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한 계명인 서로 사랑함이 없다면 어찌 그 집단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된 교회라 할 수 있겠는가? 둘째, 형제를 사랑하는 않는 자는 구원받은 자가 아니므로 그런 자들은 주님의 교회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주님의 교회는 주님의 피로 구원받은 자들이다. 세상적인 욕망에 눈이 먼 신학자들이 자신들의 세상적 욕망을 채우기 위해 만들어 내어 유포한 거짓인 “믿음만 있으면 구원을 얻는다”는 말과는 달리 성경은 밝히 말하기를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구원받은 자가 아니며 아직 어둠 가운데 있다고 한다 (요한일서2:9). 심지어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어찌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있겠느냐고 한다 (3:17).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없으니 어찌 하나님의 자녀이겠는가? 마귀의 자녀일뿐 (3:10). 그러니 서로 사랑하기는 커녕 아귀다툼을 하는 ‘교회’라는 종교적 소셜 클럽을 어찌 교회라 할 수 있겠는가? 셋째,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세상 속에서 행하는 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뜻은 언제나 사랑이시니 그 몸인 교회가 행하는 모든 것은 사랑으로 되지 않으면 안 된다 (고린도전서16:14). 따라서 사랑이 없는 ‘교회’ 간판만 달고 있는 종교적 소셜 클럽들은 주님의 몸인 교회가 될 수 없다. 마치 개가 밥을 먹을 때 지 새끼가 좀 먹으려 해도 으르렁거리듯이 종교적 비즈니스맨들은 평소에는 자신을 위장하기 위해 평온하게 보이다가도 세상적 이익이 조금이라도 침해되면 금방 개처럼 으르렁거린다. 그런 일이 벌어지는 곳에서 구원의 사랑을 찾는 것은 사막에서 물을 찾는 어리석은 짓이다.

자 이제 여러분들이 “우리 교회”라고 하는 곳을 바라보라. 수백명이 모여서 종교적인 무대를 만들고, 종교적인 의식들을 행하고, 종교적인 언어를 사용한다. 그러나 사랑이 있는가? 아니 당신은 당신의 형제 자매를 예수님께서 당신을 사랑했듯이 사랑하는가? 당신이 목사님이라고 추앙하는 그 사람이 당신을 그리고 당신 옆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리기까지 사랑하셨듯이 사랑하는가? 당신은 그런 사랑을 받고 있는가? 그런 주님이 보여주시고 명령하신 사랑은 찾아볼 수 없고 오직 종교적인 사람들과 행사들만 가득한 곳도 “우리 교회”이기 때문에 구원이 있다고 당신은 주장하는가? 종교적 행위들은 사이비 이단들도 한다. 미개한 토속 신앙을 가진 우상숭배자들도 한다. 아무리 종교성이 강하더라도, 제 아무리 많은 종교적인 행위와 언사로 예배를 가장한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그런 것은 돈벌기 위한 쇼에 불과하다 (사도행전17:22). 마귀의 자녀들의 마귀적 예배에 불과하다.

사랑이 살아있는 교회를 찾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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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생각을 좀 해보라. 수백명, 수천명이 일주일에 단지 두어 시간 동안 모여서 도대체 어떻게 서로를 사랑할 수 있는가? 서로 속내를 알고 이해하기는 커녕 서로의이름이라도 제대로 알 수 있겠는가? 목회자가 그 많은 교인들의 사정을 파악하지도 못하고, 알아도 보살펴 주지도 못하는데, 도대체 거기 누구에게서 예수님께서 명하신 대로 사랑하는 사람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정신차리라! 마귀의 자식들 속에서 죄의 노예가 되어 살면서도 “내 구원은 이미 완성되었으니 됐다”는 착각에서 벗어나라. 자신이 구원받아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어둠 중에 어둠 속에 있는 자여. 참된 구원의 교회를 찾아 나오라. 종교적 소셜 클럽에서 세상적인 이익을 얻더라도, 구원을 포기하지 말라. “우리 교회”에 구원의 사랑이 없다면, 오전엔 거기 가서 사교를 나누고 세상적 필요를 채우고, 나머지 시간에는 참된 구원의 교회를 찾으라.

참된 교회는 찾기도 쉽다. 구원이 없는 교회에서 구원을 찾으려니 어려운 것이지, 구원이 있는 교회는 그 자체가 분명하다. 그것은 주님께서 명하신 살아 숨쉬는 사랑을 행하는 사람들을 말하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은 백리밖에서도 아름다운 주님의 향기가 풍긴다. 사람들의 입을 타고 소문을 타고 칭송이 들린다. 그리고 가서 보면 명약관화하다. 세살짜리 애기도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아는데 당신은 왜 모르겠는가? 그들이 당신을 주님의 사랑으로 진정 사랑하는지 아니면 당신이 가진 것을 빼앗기 위해 친절한 척을 하는지 말이다. 진정 구원을 바라라. 정신을 차리라. 그리고 주님의 사랑으로 서로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로 나아오라. 귀있는 자는 들을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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