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세심한 인도자

그것이 진정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장차 나의 인생을 어떻게 바꿀 지 전혀 모른 채 하나님 앞에 나머지 인생을 하나님의 종으로 살겠다고 서약을 한 것이 2006년 4월 6일 이었다. 그리고 10년이 훌쩍 지나갔다.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던 그 10년의 세월이 우리 가족에게 가르쳐 준 여러 교훈 중에 하나가,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들이 당신께 드리는 헌신을 얼마나 세심하게 돌아보시는 가이다.

그 서약의 의미를 잘 몰랐지만 나의 헌신은 진정한 것이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그 서약에 준해 나를 이끄셨던 것 같다. 사업을 그만 두게 되었고 비지니스를 판 적지 않은 몫돈을 손에 쥐게 되었다. 또 다른 사업을 시작했지만 6개월이 안 되어 포기해야만 했다. 제법 규모가 있는 분당에 자리잡은 미술/디자인 입시학원이었는데 놀라웠던 것은 보증금만 1억인 초기단계의 학원이 내놓은 지 일주일만에 팔렸다는 것이다. 나이지리아 선교사인 맏형의 권유에 따라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 미국으로 오기로 무작정 결정했다. 억단위 전세 아파트를 해지하고, 사업하면서 아내에게 사 준 수천만원어치의 럭셔리한 살림살이들을 헐값에 팔거나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리스하던 차는 물리고, 미국행 비자를 신청했다. 6월에 결정을 하고 8월에 학원이 팔리고 10월 개강 학생비자를 신청하는 등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그런데, 비자 인터뷰를 하는 날까지도 나를 그 일사천리로 이끌은 것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했다.

인터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Financial document 즉, 돈이 들어있는 통장이다. 전날 밤에 서류가방에 몇번이나 확인을 해서 챙겨 두었다. 아침에 나가면서 또 확인 했었다. 파란색 커버의 우리은행 통장. 인터뷰가 원만하게 진행되고 마지막으로 영사가 통장을 보자고 했다. 자신있게 가방을 열었다. 그러나 통장은 보이지 않았다. 기업통장 등 다른 많은 통장들은 다 보이는데 그 통장은 아니었다. 영사가 서류에 어떤 스탬프를 찍어 주면서 다시 준비해 오라고 했다. 사실 non-refundable 비행기표도 예매를 해둔 상태였다. 나는 속으로 “아 하나님이 원하신 게 이게 아니었구나!” 하고 생각했다. 망연자실하여 집으로 돌아오는 시외버스를 탔다.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항상 가지고 다니는 성경 강해 테이프를 듣기 시작했다. 새로운 태잎이었는데 다니엘서 9장 강해였다. 하지만 그것도 무너져 내린 마음을 진정시켜 주지 못했다. 잠시 후 “4월 6일”이라는 날짜가 내귀를 번쩍 뜨이게 했다. 강해에 의하면 다니엘이 말한 일흔 주를 어떤 방식으로 계산하면 주후 33년 4월 6일인데 이날이 바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날이라는 것이었다. 그 강해의 옳고 그름을 차치하고 나는 그 날짜, 내가 하나님 앞에 서약한 그 특별한 날짜가 그 태잎에서 흘러나왔다는 사실 자체가 내게 주는 무슨 메세지라고 생각했다. 가방을 뒤져서 스탬프가 찍힌 문서를 찾아 비로소 읽어 보았다. 어이없게도 “비자 거절”이 아니라 단지, “문서를 찾아 언제든 다시 오라; 순서를 기다릴 필요 없다”는 말이었다. 다시 통장을 찾아 보았다. 가방 속 바로 거기에 있었다. 영사 앞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 바로 거기에 그대로 있었다. 판교를 들어가기 전이었다. 기사님에게 무조건 차를 세워달라고 졸랐다. 내리자 마자 택시를 잡아 타고 영사관으로 가서 기다림없이 바로 비자승인을 받았다. 비행기 일정을 말했더니 Chung이라는 그 영사가 여권을 친히 착불택배로 보내주고 확인전화까지 해 주었다. 내 서약을 하나님께서 염두에 두시고 계시다는–그것도 정말 세심하게–생각을 처음 하게 된 것이 그때였다.

미국에 온 후 나는 아브라함, 다윗왕, 사도 바울, 그리고 우리 주님 등의 예를 볼 때, 적어도 10년은 겸손하게 죽은 듯이 준비를 해야 쓰임받는 주의 종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책상 머리맡 콜크 보드에 “Save Ten Years”라는 말을 써 놓고 인내심이 얕아질 때마다 보곤 했었다. 비자 승인을 받고 나서 그간의 갑갑함과 지루한 기다림이 다 해갈 된 후 그 10년이 생각났다. 무엇이 10년이었을까? 비자승인 통지를 받은 날은 5월 5일이었다. 미국에 와서 공부를 시작한 후 9년 7개월 만이다. 그런데, 한가지 생각난 것이 그 서약이었다. 사실은 워크비자를 기다리면서 아무리 마음을 다잡았지만 때때로 세상적인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던 나 자신을 회개하며 정말 순수한 마음의 종이 되겠노라고 하나님 앞에 다시 서약을 했었다. 얼른 일기장을 펴서 그 날짜를 확인해 봤다. 4월 5일이었으면 완전한 10년이었을 거다. 하지만 그것은 2016년 4월 26일이었다. 처음 서약을 한 뒤로 다시 그 서약을 갱신할 때까지 10년 20일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 주에 비자승인 노티스를 받았다. 올 4월 5일에 무슨 일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모른 채 한 서약이었지만, 하나님은 세심하고 세심하게그 서약에 담긴 미천한 나의 헌신의 마음을 잊지 않으시고 보호하고 성장시키시면서 이끌어 주셨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제 이 말씀을 생각할 때마다 저절로 흐믓한 기쁨의 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함이 없느니라” (로마서 11장 2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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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Add yours

  1. 레베카 says:

    인생의 달고 쓴 것들을 다 경험하고 주님께 헌신한다고 결단했으니 아주 큰 전환점이지요. 때로 우리는 그 결단의 순간을 잊어버리더라도 주님께서는 그 시점부터 우리의 삶 가운데 섬세하고 역사하시며 믿음의 사람으로 키우시는 것 같아요. 진실하고 체험이 있는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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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채공명 says:

    샬롬, 주님의 이름으로 문안드립니다.
    전도자님께서 이곳 조지아에 오신지 한달하고 하루가 지난 날에 만난 채공명 목사입니다.
    오늘 우연찮은 만남 속에서 이뤄진 귀한 대화를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같은 동네에 이렇게 귀한 분이 살고 계시다는 것에 큰 위로를 얻으며 … 종종 뵐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감사합니다.

    – 채공명 목사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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