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처음 교회에 나가면서 성경 신약을 읽기 시작했을 때 많은 것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는데, 그 중에 가장 이해가 되지 않았던 두 단어가 있었다. 하나는 “성령”이었고 다른 하나는 “믿음”이었다. 성령에 대한 이해는 아직도 충분한 지점에 이르렀다고 자신있게 말하기 힘들다. 이와 달리 믿음에 대해서는, 신학을 공부하고 또 신앙 생활을 해 나오면서 어느 시점에 이르러 무엇인지 알게 된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어쩌면 기독교의 가장 기본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믿음이 무엇인지를 안다고 그냥 쉽게 생각해 버리거나 혹은 믿음이 무엇인가 생각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는 많은 사람들과 같이 나도 그저 쉽게 생각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지난 10년 동안 우리 가족에게 찾아왔던 시련의 시간은 믿음이 무엇인가에 대해 깊은 고민과 성경공부는 물론이고, 삶을 통한 깨달음에 이르게 해 주었다. 물론 아직도 믿음에 대한 온전한 지식에 이미 이르렀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전에 그저 당연하고 쉽게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믿음이 무엇인가를 조금 맛을 보기 시작했다고 쯤 말하는 것이다. 깨달임이란 것이 본래 그렇듯, 그 ‘조금’ 조차도 글로 쓰자면 수백 페이지가 될 것이다. 그래서 다만 실타래를 풀듯이 차근차근 조금씩 천천히 시간과 정성을 들여서 써 나가고자 할 뿐이다. 굳이 쓰고 인터넷에 올리고자 하는 이유는 그 깨달음이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다.

믿음에 대한 오해가 적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심각한 수준이다. 가장 흔한 오해는 믿음을 그저 정신적인 현상, 심리적인 상태, 혹은 지적인 인식 등이라고 보는 기독교계를 오랫동안 지배해 오고 있는 신학적 견해이다. 정신 심리 혹은 지적 현상에 국한하여 믿음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구원에 있어서 행위와 믿음을 분리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물론 그분들의 삶에 의로운 행위가 반드시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다만 그분들은 자신들이 사는 의로운 삶과 믿음을 분리하여 생각한다. 즉, ‘나는 믿음으로 온전한 구원을 얻었고 (구원의 완성) 그 구원의 은혜에 합당하게 살기 위해 의로운 삶을 산다. 하지만 내가 의로운 삶을 살지 않더라도 믿음으로 이미 완성된 믿음은 그 어느 것도 빼앗아가지 못한다’ (결정론). 이에 대한 가장 흔한 표현이, ‘행위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만 구원 받는 것이다’ 라는 말이다. 로마서 3:28절이 그 의견의 대표적인 성경적 근거이다. 하지만, 로마서 3장과 4장에서 말하는 행위는 구원에 이르기까지의, 그 이전의, 행위를 염두에 둔 논의임을 봐야 한다. 구원받는 과정과 구원을 완성해 가는 과정에서의 행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면, 빌립보서 2:12는 “두려움과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 나가라”고 말한다). 이는 로마서 4장 1절부터 10절까지를 보면 분명하다. 그 부분은 아브라함이 의롭다함을 받기 전까지의 행위에 대해 논하는 것이다. “자랑할 것이 없다” (1절), “삯” (4절), “일한 것이 없이” (6절), “사하심을 받는다” (7절) 등의 표현은 구원의 시작 이전의 일들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반면, 18절부터는 아브라함이 의롭다함을 얻은 이후의 삶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창세기를 통해 알다시피, 많은 의로운 행위들이 포함되어 있다 (물론 그 행위들은 믿음으로 말미암은 행위들이다). 다시 말하면 구원 이전의 행위는 구원의 개시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지만, 구원 개시 이후의 의의 행위는 구원에 필수불가결하다는 말이다. 자세한 논의를 할 기회가 있겠지만, 우선 4장 22절을 보면 표현 상 분명하다. “그러므로”라는 단어가 그것이다. 이런 의로운 삶을 살았으므로 아브라함이 처음 믿었을 때 그 믿음을 의로 여겼다는 의미다. 다시 말하면, 그 삶의 과정이 의롭지 않았더라면 처음 믿었을 때의 그 믿음도 의롭다 여기시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믿음 이후에 행위가 구원에 필수불가결하다는 것은 로마서 6장을 보면 너무도 분명해 진다. 구원을 얻은 사람이 의의 종이 되지 아니하고 다시 불의의 종으로 살 때 영생이 아닌 사망이 주어진다는 경고가 엄중하다. 따라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은 과거의 행위에 대한 댓가 혹은 상급으로 받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후 행위 즉 구원 개시 이후의 삶 조차 구원과 관련이 없거나 단지 선택사항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믿음으로 사는 의로운 삶의 과정이 없이는 처음부터 믿음으로 받는 구원조차 받지 않은 것과 같이 된다는 의미다.    

이런 오해를 벗어난 참된 성경적 믿음의 개념은 행위, 즉 삶과의 필수불가결한 연관 속에서 찾아야 한다. 믿음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개념을 가장 널리 전파한 독일 신학자 마틴 루터가 가장 중요한 근거로 삼은 것이 로마서인데 그 책의 머릿말에서 분명히 한 것이 로마서에서의 믿음, 의로움을 받는 것, 그리고 구원이 바로 삶과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원칙이다. 그 원칙을 표현한 것이 하박국 2장 4절이고 그것을 다시 로마서 머릿말에서 사도 바울이 인용하고 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 구절 자체에서 직관적으로 알 수 있듯이 구원은 믿음만으로도, 혹은 삶만으로도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삶으로만 완성될 수 있다. 이에 대해서 로마서도 정확하고 분명하게 말한다. 3장과 4장에서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해 율법의 행위—앞서 말한 바와 같이 믿음이 생기기 전의 행위를 말한다; 참된 믿음이 생긴 후로는 율법의 행위로 구원받겠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게 될 것이므로 그 이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와 관련하여 말한다. 그러나 5장부터 끝까지는 믿음의 삶에 대해서 말한다. 5장 3-4절은 믿음의 삶에 대한 총론적 말씀이다. 우리는 믿음으로 고난과 환난을 이겨내고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인격(연단)을 이루어야 한다. 6장은 죄에 대하여 죽은 자가 되고 우리 자신을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고 하는데 (12-13절), 이는 믿음으로 의롭게 살라는 의미다 (요한1서 3:7 참조). 이 가르침은 12장 1절과 2절에서 다시 한 번 강조된다. 이로부터 시작하여 13장과 14장을 지나 15장 중반까지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행해야 함을 강조한다. 로마서의 대부분이 믿음의 삶에 관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마틴 루터 등 적지 않은 근현대 신학자들은 그 책의 3장과 4장 일부분 몇 구절에 기초하여 행위를 배제하고 믿음만으로 온전한 구원을 받는다는 이론을 만들어 내었다. 그러나 믿음에 바탕하지 않은 삶이 죄이듯이 (로마서 14:23), 삶을 떠난 믿음은 의미가 없다 (고린도전서 13:1-3 참조). 이 진리를 가장 집중적으로 가르치는 성경의 책으로 로마서 외에 야고보서가 있다. 야고보서는 전체적으로 믿음으로 사는 삶의 중요성을 가르친다 (1:2-8). 특히 2장 14절 이하에서는 아브라함과 기생 라합의 예를 들어서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살아있는 진정한 믿음과 영혼이 없는 몸과 같이 죽은 믿음 즉, 귀신들도 가질 수 있는 구원과는 상관없는 믿음을 엄격히 구분한다. 이를 통해 분명히 하는 것은, 믿음은 삶과 분리되어서는 구원에 아무런 영향도 줄 수 없다는 하나님의 철칙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성경이 가르치는 참된 믿음은 그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살도록 가르쳐 주고 그런 삶 중에 오는 고난과 환난을 이길 힘을 주는 믿음이다.

그런 참된 믿음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믿음의 주이시요 온전케 하시는 이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이다 (히브리서 12:2). 예수님께서 믿음만 가지고 계셨던가? 당연히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믿음으로 사는 삶을 마지막 숨을 쉬시기까지 우리에게 보여 주셨다. 그분의 삶은 죄가 없으신 온전히 깨끗한 삶이었고 (히브리서 4:15), 하나님의 사랑의 온전한 결정체적 실천이었으며 (로마서 5:8; 요한1서 3:16), 자신의 모든 것을 드려서 죽기까지 섬기는 삶이었다 (마태복음 20:28). 그분은 믿음으로 앞에 있는 하나님의 축복을 보시고, 고난과 핍박을 견디시고 오직 하나님의 사랑으로 자신의 목숨까지도 바치어 섬기며 사신 분이다 (빌립보서 2:5-8; 히브리서 12:2). 예수님께서 믿음은 있으되 그런 삶을 사시지 않았다면 어찌 우리의 주님이 될 수 있었으랴? 오직 믿음의 삶을 온전히 사셨으므로 우리의 믿음의 주시요 우리의 믿음을 온전케 하시는 이가 되신 것이 아니랴?

믿음이 삶과는 떼어져서는 사람의 구원에 아무런 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살펴보았지만, 믿음이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를 말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논의는 믿음의 성경적 정의에 대한 건설적인 의문을 갖게 하는 점에서 또 기독교계에 만연해 있는 믿음에 대한 혼란을 대충이라도 걷어내어 진짜 알맹이를 보기 위한 첫걸음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은 것은, 모든 삶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는 믿음에 대해 올바른 이해를 하지 않는다면 참 구원의 길이 무엇인지도 모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론적 지식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진리를 따라 사는 것이다. 그 믿음에 관한 진리는 이것이니, 하나님께서 밝히 말씀하셨듯이,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것이다 (하박국 2:4; 로마서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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